닫히는 문에 필사적으로 들어갔던 10년전 - 97년 외환위기
그적거림 2007/11/21 15:011996년 10월 제때 졸업을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예감은 했으나 막상 이수학점을 다 계산해보니 2학점이 부족했다.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12월 방학하자 마자 경기도 북부 지역에 있는 장흥유원지의 공사장으로 갔다.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하길래 인테리어 아르바이트를 했다.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건물 외벽을 인테리어 하는 것이었다. 영문과 나와 무슨 건축 노가다냐고 하겠지만 그게 단가가 제일 쎄고 마음 편했다. 몇년전 거기를 가봤는데 그 건물 아직도 있더라. 짠돌이 노랭이였던 건물주 차도 그대로이고...
노가다로 번 돈으로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고 고시원비를 냈다. 6개월만 버티면 된다. 그 후론 어떻게 되겠지. 그러나 나는 취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안했다. 졸업 이수학점도 부족할 정도인데 평점이 잘 나올리 없지. 그래서 공기업 준비를 했다. 그때 6개월, 그렇게 절실하게 공부해본 적이 있을까? 그 후 6년뒤 대학원에 가서도 열심히 했지만 대학원 공부는 재미있었지 절실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갔다. 회사 연수원에 들어가니 좋은 것은 오직 하나. 밥을 공짜로 맘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과 더 이상 공사장 노가다 하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밀리지 않고... 그러나 동시에 1년 동안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이란 이런 것이었다. 인사과에서 전화가 온다. "언더독씨. 입사 지원서를 검토하던 중에 졸업이수 학점이 부족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격사유로서 합격을 취소하오니 이제껏 받은 월급을 모두 반납하시고 퇴사하십시오" 매일은 아니지만 1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97년 8월 입사후 11월에 외환위기가 발생해 경제가 급속히 나빠졌다.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회사가 망하는 급박한 상황에 신입사원을 뽑는 것은 사치였을 것이다. 기존 직원도 짜르는 판에... 후배들의 입사가 취소되고 입사가 1년 이상 지연되는 일도 생겼다. 사람의 운명이란 하늘에 있는 것일까? 그때 못 들어 갔더라면 난 결혼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 문이 닫히려면 필사적으로 들어간다. 문을 부셔서라도... (마지막 글은 농담).
나는 여전히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본다. 이건 체념이나 운명론은 아니다. 노력하지 말라는 말도 아니다. 열심히 해야 하지만 그 성과는 하늘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97년 외환위기때 기회를 놓친 많은 후배와 동기들은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나보다 학점도 좋았고 훨씬 성실했다. 그런데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런 비슷한 경우를 회사에서도 많이 보았다. 능력은 있는데 승진은 못하는...
나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것도 그때만... 앞으로도 그럴지는 물론 모른다. 그래서 매사가 조심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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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를 97년 외환위기로 수정(2007.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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