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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72일이나 걸린 토트넘의 감독찾기 여정의 비하인드 스토리 2편: 5월 내내 노렸던 포체티노, 콘테의 역제의, 틀어진 폰세카 딜, 팬들을 화나게 한 가투소, 그리고 누누.

스테이플우드 2021. 7. 5. 15:41

By Jack Pitt-Brooke Jul 2, 2021/원문보기(디 애슬레틱)

초기에 포체티노의 새로운 버전을 찾기 위한 시도를 했으니 직접 포체티노에게 가는 것은 어떨까?

레비에 의해 경질된지 18개월이 지났음에도 포체티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크리스마스에 파리 생제르망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은 이런것들을 바꾸지는 않았다.

PSG를 맡으면서 전반기동안 어려움을 겪은 포체티노는 새로운 삶에 대한 좌절감을 오래된 친구들과 런던에 있는 동료들에게 털어놓곤 했다. 그는 클럽의 스포츠 디렉터인 레오나르도만큼 강력할 수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였고, 감독직에 있어서 전임자 토마스 투헬과 같은 정치적인 문제를 겪게 되었다. 그는 연간 3천 6백만 유로를 받고 있는 네이마르와 다른 다른 선수들간의 큰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유대감을 공유할 수 있다록 노력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가족 모두가 파리에 살던 것이 아니었고 런던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파리에 있는 호텔에 살면서 이 모든 일을 해야 했다.

토트넘 사람들은 포체티노가 클럽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토트넘의 "DNA"에 대한 레비의 약속에서 가장 먼저 스퍼스의 현대적인 정체성을 창조한 남자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월 내내 히첸은 포체티노에게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었으며 그가 5월 23일에 PSG의 시즌이 끝난 후 북런던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와 같은 대화는 더욱 강렬해졌다. 이 아르헨티나인은 골머리를 앓았다: 가장 큰 부분은 감정적으로 토트넘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다는 것이며, 그가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곳이었으며, 그가 클럽 내에서 진정한 권력을 쥐웠던 곳이고, 모든 것이 말이 되는 것 같았다. 이와 동시에 그가 PSG를 나오는 것이 꺼려졌던 부분은 킬리안 음바페처럼 재능이 있는 선수들을 두고 짧은 임기만 보낸채 나오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토트넘은 포체티노가 스스로 PSG를 나와야만 토트넘과 재결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도 PSG가 "NO"라고 말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 팀은 그들의 의지와는 다르게 새롭게 임명한 감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제안에 발끈했다. 스퍼스가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해결책으로 다른 클럽의 감독을 이런식으로 빼오려고 시도를 해야 하냐며 파리 내부에서 불만이 있었다. " 그곳의 한 소식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토트넘은 자기집에 불난거 피할려고 다른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PSG는 이미 투헬을 경질을 하고 시즌 중반에 포체티노를 데려오면서 충분히 혼란을 겪었다. 그들은 포체티노가 토트넘으로 복귀하는 것이 로맨틱한 시도라고 얼마나 생각을 하든, 연봉을 두 배로 올린다 하더라도 포체티노가 아무데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했다. 포체티노가 계약으로 묶여있는 한 그는 계약을 지켜야 했다.

이 시점부터 포체티노나 토트넘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5월 마지막 주말까지 PSG 클럽 회장 나세르는 포체티노에게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PSG는 여름에 이적 시장을 계속 추진했고 바이날둠과 하키미와 같은 선수들과 계약을 맺어 토트넘은 포체티노가 파리에서 잔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트넘은 이 단계에서 원래 명단에 있었던 텐 하흐를 임명할 수 있었다. PSG는 포체티노에게 접근해오는 어떠한 것도 거절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한 클럽이지만 아약스는 그렇지 않다. 만약 스퍼스가 5월에 텐 하흐에게 집중을 해서 아약스가 대체자를 임명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면 그들은 그를 보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비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레비는 슈퍼리그의 실패, 팬들과의 껄끄러운 관계, 클럽의 재정 문제,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 일어나는 다른 문제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시즌 막바지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5월 말에 그는 클럽 운영을 위한 새로운 계획에 집중할 수 있었다.

레비에게 축구에 관한 결정권을 새로운 사람에게 위임을 해야만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는 파비오 파라티치에 대해서 말했는데, 그는 지난 몇 년간 유벤투스가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조율하는데 도움을 줬었다. 포체티노가 5월 말에 임명이 되었다면 원래 있었던 조직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겠지만 일단 그 생각이 사라졌기 때문에 레비는 새로운 축구 전문가를 영입해야 한다는 기회를 붙잡았다.

그는 5월 말에 파라티치의 움직임을 탐색하기 시작했지만 포체티노가 후보에서 내려온 상황 속에서 여전히 감독이 필요했다. 그리고 파라티치는 그 일에 딱 맞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레비가 말한 젊은 선수들에 집중을 하면서 리빌딩을 하는 감독을 임명하겠다는 약속과 안토니오 콘테는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세계에서 탑5 안에 드는 감독이다. 그리고 5월 26일에 파라티치가 유벤투스를 떠나면서 콘테 또한 세리에 A의 챔피언인 인터밀란을 떠났다. 그는 새로운 감독직을 찾고 있었으며 중개인을 통해서 그가 토트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갑자기 새로운 계획이 짜여지고 있었다. 파라티치와 콘테는 유벤투스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었다. 콘테는 자주 그가 일하던 클럽과 싸웠다. 하지만 그는 파라티치와는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파라티치가 콘테만큼 좋은 감독을 영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는 부임 첫 시즌만에 스퍼스가 다시 한 번 트로피를 도전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6월 첫째 주에 레비는 새로운 계획을 밀고 나갔다. 콘테가 토트넘과 역할에 대해서 논의를 했을 때, 그는 매우 인상깊었으며 마치 그 일을 원하는 사람처럼 말을 했다. 그는 자신의 야망과 계획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를 했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지-특히 현재 클럽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것-그리고 어떻게 수비적으로 조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콘테는 까다롭기로 유명했지만 그의 연봉이나 조건에 대해서 제기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 콘테는 구단이 그와 계약하는 것에 일말의 의구심이 있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허락을 받은 한, 그 프로젝트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만약 클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끼면 인테르에서 했던 것처럼 그가 떠날 것이라고 암시를 했다.

이 요구 이후 토트넘은 계약이 성사 될 수 있으며 그들이 감독 찾기 여정에서 바랬던 감독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성공적인 감독을 발견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비록 콘테가 처음에 제시한 기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주가 지나고, 양쪽은 최종 합의를 향해서 나아가야하는 상황에 있었는데 콘테가 다른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6월 4일에 결국 이 이적은 중단되었다.

왜 콘테가 정확하게 물러서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이유가 불분명하다.

한 가지 썰은 스퍼스가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계약을 조달할 수 있을 만한 자금을 침체된 시장 속에서 마련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것은 콘테가 향후 몇 년간 진정으로 트로피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을 할 수 있냐는 그들의 능력을 의심했다는 것이다. 레비는 클럽의 재정이 전염병으로 인해서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받았는지 알고 있었기에 이것이 토트넘의 지속 가능한 모델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번 여름에 과도하게 이적료를 지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을 해야만 한다.


콘테와의 협상결렬은 사실상 스퍼스를 원점으로 되돌려놨다.

그들은 다시 시작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파라티치가 책임자였다. 그가 맡게 되는 역할을 고려해볼 때, 모든 축구적인 결정을 관리하는 것은 당연했다. 6월 8일에 더 많은 논의를 위해서 토리노로 클럽 관계자가 날아갔을 때 그 다음주에 걸쳐서 얘기가 계속되었다.

파라티치의 관심은 파울로 콘세카에게 갔다. 스퍼스가 감독을 찾는 과정 초기부터 고려했던 이 포르투갈인은 지난 시즌 말에 로마를 떠나게 되었다. 그는 포체티노나 콘테와 같은 매력적인 요소가 없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레비가 말한 몇 가지 사항에 부합했다. 그의 샤흐르트 도네츠크와 로마 팀은 레비가 당초 약속한 것처럼 매력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그가 우크라이나에서 세 번 연속 더블을 달성했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은 증명해 보인것이었다.

그래서 파라티치는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밀란에 있는 폰세카와 감독직에 대한 협상을 가졌으며, 유로가 시작되는 로마에서 6월 11일에 2+1년 계약에 동의를 했다. 다음날, 파라티치는 스퍼스의 새로운 "매니징 디렉터이자 풋볼 디렉터"로 발표가 되었고 레비는 그가 "클럽의 축구팀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계약서는 폰세카에게 보내졌고 그 시점에서 그가 다음 주 초에 감독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최종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것만 남아있었다. 파라티치는 6월 14일과 15일에 이탈리아의 휴양지 코모에서 폰세카와 한 번 더 논의를 가졌다. 그들은 프리시즌 계획, 선수단과 이적시장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코칭 스태프들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토트넘은 폰세카가 데리고 있는 두 명의 코치를 데리고 오고 구단이 제공하는 두 명의 코치들과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이틀동안 파라티치는 마음을 바꿨다. 이적 정책에 대해서 의견 차이가 있었다. 코칭 스태프들에 대한 명확한 계획은 없었다. 폰세카는 공격적인 축구를 하라는 레비의 비전과 파라티치가 수비를 고쳐야 한다는 파라티치의 주장과 상충이 된다고 느꼈다. 그런 후 폰세카는 가족들과 함께 밀란에서 키예프로 휴가를 떠났으며, 토트넘의 변덕이 별로였으며, 협상에서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이 때, 파라티치는 다른 감독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조르제 멘데스는 파라티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사람은 2018년에 멘데스의 주 고객인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유벤투스가 영입을 하면서 친밀해졌다. 멘데스는 젠나로 가투소가 불과 2주전에 계약한 피오렌티나의 감독직을 파행할거라고 말했다. 가투소와 피오렌티나는 사이가 틀어졌는데, 클럽은 멘데스의 고객인 세르히오 올리베이라, 제주스 코로나, 콘찰로 게데스를 이적시장에서 밀어 붙이는 것을 꺼려했다.

파라티치는 최근에 AC밀란과 나폴리에서 감독직을 보낸 가투소의 업적을 크게 존경했다. 만약 파라티치가 여름에 유벤투스에 남아있었다면, 피를로 대체자로 가투소를 데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파라티치는 유벤투스를 떠났고 클럽은 대신 알레그리를 데려왔다. 그래서 파라티치는 빠르게 움직였다.

파라티치는 가투소를 만났고 감명을 받았다. 가투소는 카리스마가 있으며, 설득력이 있는 남자로 콘테 만큼의 이력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마지막 몇 번의 감독직에서 선수들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그에게는 좋은 코칭 스태프들이 있었다. 그가 토트넘을 앞으로 몇 년동안 발전시킬 수 있는 개성과 추진력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인 6월 17일에 가투소가 피오렌티나를 떠난다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 날 오후가 되자 그의 토트넘행을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하지만 가투소의 임명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토트넘 팬들은 분노했다. 이것은 단지 그가 피사, 밀란, 나폴리에서 짧은 임기를 보내면서 감독을 맡을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가투소가 과거에 했었던 성차별적이고 동성애 혐오적인 발언, 인종차별적 학대에 관해서 지적이 되면서 트위터에는 #NoToGattoso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구단은 가투소를 임명된다면 구단의 가치와 완전히 양립할 수 없다는 팬들의 폭격을 받았다.

본지는 "당신이 가투소를 감독으로 고용할 생각을 하는 것에 낙담했습니다', '그의 플레이 스타일이나 다른 것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내가 확신하건데 당신도 봤듯이, 그가 한 말은 축구계에 있는 여성과 동성 결혼에 대한 그의 입장 때문입니다'라는 메일을 레비에게 보낸 한 팬에 대해서 알고 있다. 서포터들은 게속해서 가투소를 고용하겠다고 한다면 비디오로 그가 이전에 했던 말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요청했다.

목요일이 넘어가기 전에 레비는 가투소 선임을 철회했다.

포체티노나 콘테를 데려오지 못한 실패 그 이상으로 토트넘에게 힘든 한 주였다.

스퍼스는 포체티노나 콘테만큼 매력적이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 두 명의 후보와 근접했지만 이 둘 모두 제외했다. 그 주말까지 파라티치와 레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레비와 파라티치가 감독 여정의 마지막 국면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레비는 한 가지에 대해서 명확히 했다. 대중들에게 감독을 찾는 과정이 알려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토트넘은 이 과정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격분했으며 성공적인 감독 선임 완료는 어디에도 새어 나가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레비는 6월 21일 월요일 스퍼스가 다음 감독을 선택할 수 있는 후보들을 평가하기 위해서 다른 미팅을 열었다. 그들은 원래 후보 명단에 있었던 후보자들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들은 철저히 모든 선택지들에 대해서 탐색하길 원했다. 하지만 텐 하흐를 아약스에서 빼오기에는 너무 늦었다. 파커는 풀럼을 떠나 본머스로 갈 예정이었다.

마르티네즈와 로베르토 만치니는 유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어떤 국가 축구 협회도 대회 중반에 감독을 놓아줄리가 없었고 프리시즌은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초기 후보자들 중에서 가장 강력했던 사람은 포터였다. 토트넘은 그와 그의 경기 스타일을 좋아했지만 그들은 양쪽 모두에게 좋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포터의 방출 조항을 볼 때, 그를 브라이튼에서 빼내오는 것은 저렴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라티치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누누로 선회하는 것이었다. (누누는 가투소처럼 멘데스의 고객이다) 파라티치는 누누가 울브스에서 성공적인 임기를 보내기 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한 감독 커리어를 보고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파라티치는 누누의 팀들이 생각보다 축구를 잘했다고 주장을 했고, 그가 어떻게 울브스 팀을 개선 시키는 코칭을 했는지 지적했다. 처음에 레비는 끌리지 않았지만 파라티치는 강력하게 주장했다. 지난 주말까지 누누는 포터를 간신히 제치고 감독직의 새로운 강력한 후보가 되었다.

협상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고 2년 계약에 합의를 했다. 이번 주 화요일 마지막 회의에서 누누가 클럽의 선택이 받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는 이 감독 여정의 시작에서 레비가 원했던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 거의 7월이고 다른 믿을 만한 선택지들은 모두 소진되었다. 그날 밤, 파라티치는 마침내 런던으로 날아가 지난 한 달 동안 그가 했던 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했다.

그 다음날 수요일 누누는 스퍼스에서 계약한 것을 사진찍기 위해 도착했다.

"저는 이미 공격을 하면서 즐거운 축구를 보여주는 우리의 핵심 DNA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지난 72일을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긴 것처럼 느껴졌던 레비가 말했다. "그리고 파비오와 저는 누누가 어린 선수들을 키우고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토트넘의 팬들을 완벽하게 설득한 것은 아니었으나 2달을 넘기고서야 마침내 새로운 감독을 임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