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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의 첼시 2기 시절: 우승부터 강등권까지... 경질되기까지의 과정-1편-

스테이플우드 2021. 4. 24. 12:57

By Dominic Fifield Dec 14, 2020/원문보기(디 애슬레틱)

 

 

2015년 5월 중순에 스탬포드 브릿지의 서쪽 스탠드에 있는 VIP석에서의 대화의 주제는 조제 무리뉴로 돌아갔다. 첼시는 이전에 차지했었던 프리미어리그 트로피를 공식적으로 손에 넣기 위해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이 포르투갈인이 두번째 감독직을 맡으면서 세번째 리그 타이틀 우승은 사실상 약 2주에 걸쳐서 마무리되었다. 그는 시즌을 진행하면서 이달의 감독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날 오전에 최상위권의 감독으로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었다. 이것은 기이한 일이었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이싱을 하러 온게 아니라 케이크를 만들려고 온겁니다. 케이크가 훨씬 더 중요하며 프리미어리그가 진정한 케이크입니다."

 

첼시의 임원들은 많은 기자들과 함께 번리와 스완지시티를 상대로 완승을 거뒀던 시즌을 돌이키켜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첼시는 구디슨 파크에서 6골을 넣었고 12월까지 모든 대회에서 강렬한 21경기 무패 행진 속에서 16번의 승리를 거뒀었다. 그들은 또한 박싱데이때 보기 드문 좌절을 겪었고 맨체스터 시티에게 순간적으로 밀렸던 팀이었던 첼시는 연초부터 16개의 리그 경기를 무패로 달리도록 그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 얘기도 나눴다. 이런 투지있는 스타일로 승점차를 크게 벌러셔 아직 3경기가 남아있음에도 리그 타이틀을 확보하게 되었다.

 

물론 이 여정 속에서도 어려운 순간들은 있었다. 아무도 파리 생제르망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런던 클럽을 폭격한 것이나, 더 놀라운 일인 3부 리그의 브래드포드 시티가 FA컵에서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승리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 후 심판 판정이 팀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무리뉴는 음모론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면서 경기 관계자들이 "첼시 반대 운동"을 벌였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고요한 여운 속에서 이 이야기는 논란이 묻히게 되었다. 요즘에는 무리뉴가 훨씬 더 침착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와의 관계는 그의 첫 임기 시절에 한게점이 깨지면서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지만 지금은 양쪽 다 경험이 많이 있다. 그들은 서로의 약점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 잘 맞아 보인다.

 

그 시점에서 서로 열광했던 계약 연장이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건 단지 게약을 갱신하는 자연스러운 시기일 뿐이었다. 호주와 극동지역으로의 시즌 후 투어가 끝나고 경영진들이 휴가를 떠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회의가 열린다. 과거에 무리뉴가 빅 클럽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아브라모비치가 축구에 간섭하고 있었을 때 그 긴장감은 때로 견딜 수가 없는 정도였다. 이제 모든 것에는 자연스럽게 균형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면 이 모든 것을 말하기는 쉽죠." 이사진 중 한 명은 미소를 지으면서 껄껄 웃었다. "우리가 5연패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

 

이런 경솔한 발언은 결국 예언처럼 들리게 되었다.

 

이후 7개월 동안, 2014-15시즌 동안 274일이라는 전례없는 사례로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올랐던 팀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아직 새로운 계약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생긴 일로 무리뉴의 감독직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그의 두번째 임기는 의료진들에 대한 폭발부터 터치라인에서 점점 구차해지는 행동에 FA의 벌금 징계까지에 이르는 광란의 논쟁으로 전략하게 되었다. 첼시 선수들의 자신감은 사라지게 되었다. 한때 난공불락이었던 스탬포드 브릿지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사우스햄튼, 본머스, 리버풀에게 점령당했다.

 

5년전 12월 17일에 아래층 식당에서 직원들이 크리스마스 점심을 먹은 후 테이블을 치우고 있을 때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감독이 해고되었다. 그는 정교한 유인책으로 언론의 발을 따돌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본지는 그가 마지막에 떠났던 순간이 그의 조수의 자동차 한 대가 밀반입 되어 클럽의 훈련장을 떠났다고 밝힐 수 있다. 그의 퇴장은 위엄이 없었다.

 

병든 챔피언이 되어버린 첼시는 16위로 강등권과 1점차가 나고 있었다. 테크니컬 디렉터인 마이클 에메날로는 구단 내 TV 채널 인터뷰에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코치와 이 결정에 납득하지 못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분열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이것은 "뚜렷한 불협화음"의 이야기로 캠프 안에서 쥐새끼로 인식된 사람들과 타이틀을 방어하는데 붕괴되어버린 오늘날의 프리미어리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야기이다.


"지난 시즌에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직업 윤리와 집단 윤리가 있었죠. 여기에 데려온 몇 명의 선수들은 우리가 이전에 가지지 못했던 자질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기 때문에 전 그들이 너무 만족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적절한 때에 잘 들어왔어요. 저는 아브라모비치가 저를 원하는 만큼 여기에 머물겁니다. 그는 모든 것을 우승했죠. 만약 그가 받은 전리품을(그가 우승해서 받은 트로피들) 복제한 것이 있다면 그는 큰 집이 필요할겁니다."

-조제 무리뉴, 2015년 5월 3일 크리스탈 팰리스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뒀을 때.

 

이것은 정말 숨이 멎을 정도로 빠르게 내리막길로 치닿았다. 붕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첼시의 타이틀 성공에 대해 잠시 미련을 둘 가치가 있다.

 

헤드 코치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 6년간의 공백을 깨고 클럽으로 복귀한 2013년에 무리뉴는 구식이 되어버린 '스페셜 원'이라는 틀을 버리고서 다소 덜 끌리지만 뻔뻔스럽고 대담한 것을 말했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우리가 (리그에서 우승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첫 시즌에서 발전을 보여주면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면 두번재 시즌에 챔피언이 되겠죠."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했지만 이것은 허황된게 아니었다.

 

2013년 첼시 복귀 후 첫 기자회견에서 호세 무리뉴 감독이 얘기하고 있다.

무리뉴는 첫번째 시즌이 끝날 무렵에 셀허스트 파크에서 특히 활기를 잃게 되었고, 잃은 것으로서 기자의 메모지에 "balls"라는 단어가 그가 물려받은 팀이 결여된 것이라고 쓰여졌다. 이런 이유로 첼시가 영입을 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인들에게 잘 알려진 에이전트 조르제 멘데스는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디에고 코스타를 꼬셨다. 무리뉴는 아들의 유스팀 마지막 경기였던 풀럼전을 미루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해서 그를 바르셀로나에서 런던으로 데리고 올 수 있도록 설득했다.

 

이 두 선수는 감독의 우선 픽이었고, 이 추천은 2013-14시즌이 끝난지 막 24시간이 지났을 때 이사회에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그들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준비가 되었고, 자랑할만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즉각적으로 팀을 더욱더 인상적이게 만들었다. 마리나 그라노브츠카야가 협상을 주도하면서 두 사람의 거래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집중적인 영입을 운영함으로서, 이것은 무자비할정도로 효율적이었다. 두 사람이 합쳐서 이적료로 £60m 였으니, 이것은 잘 쓴 돈이었다. 첼시가 시즌 초반부터 우뚝 솟아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득점하고 창조하는 부분에 이 듀오의 역할이 컸기 때문이다.

 

리그 중반기가 다가왔을 때, 특히 새해 첫 날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토트넘에게 5-3 완파를 당한 것은 강한 핵심 선수들이 여전히 있고 잘 훈련된 경기력을 보여주는 네마냐 마티치, 존 테리, 게리 카힐, 브래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심지어 베테랑 디디에 드록바까지 있었지만 결승선을 위해서 기존의 것을 버리고 팀을 실용적으로 바꿔야 했다.

 

새해 전야에 선수들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해주면서 선수들이 정상적인 일과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리뉴는 아마도 런던에서 일어난 패배에 대해서 약간의 비난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코밤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은 코치에 의해서 런던 중심지 호텔로 이동하기 전에 연기되었다. 첼시의 선수들이 집에서 몇 시간을 보낸 덕분에 호텔 체크인이 오전 1시 가까워져서 했고, 그 과정에서 그드의 신체적인 리듬이 깨지게 되었다. 그들은 스퍼스에게 부진했고 예상대로 완파당했다.

 

당시 팀에 참여했던 한 인물은 본지에 말했다. "팀의 접근 방식이 그렇게 치밀하게 계획이 되면, 무해한 것도 전부 다 죽여버릴 수 있게돼죠. 조세가 팀을 돕기 위해서 그렇게 한거겠지만 역효과를 냈습니다. 대패에 대한 그의 반응은 모든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내게 만들었고, 그들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위험을 덜 감수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죠." 프랭크 램파드를 영입한 맨체스터 시티의 전망은 특히 그들에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뒤이어 맨시티가 무패행진을 하면서 부상병동이 된 첼시의 선수단들에게 우승 타이틀을 위한 레이스에 위협이 되자, 코밤에 있는 선수들은 무리뉴가 더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고 채찍질을 하면서 기준을 더 높이라고 할 것임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무리뉴가 다른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헤드 코치가 농담을 던지고 복도에서 선수들과 껴안았고, 팀 내부에서 벌금을 완화하는 등 꽤나 무분별한 행동을 하면서 '기강 해이'가 만연했다고 회상했다. 무리뉴가 왜 그런 행동을 한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선수들이 가까워진 성공때문에 충분히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저는 어느 누구와의 갈등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그가 설명했다. 스퍼스전 이후에 그들은 리그 타이틀이 그들의 것이 될 때까지 리그에서 다시 패배하지 않았다.

 

상대팀 서포터들은 "지루해, 지루한 첼시~"라고 외치면서 부러운 불평을 결승 라인을 통과할 때까지 외치자 무리뉴는 경멸적인 말투로 "원정팀들의 개새끼들이 짖어대도 우리는 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첼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의 팀이었다. 그들은 빛나는 순간에 확고함이 있었다. 아스날이 리드를 하든 맨시티나 맨유 또는 토트넘이 리드를 하든지 간에 추격해오는 팀들은 좋은 결과를 누렸지만 어느 누구도 무리뉴식의 거침없는 효유렁이나 일관성에 필적할 수가 업었다. 스퍼스가 그 시즌에서 득실차로 2주동안 1위를 했던 것을 제외하면 첼시는 시즌 내내 1위를 차지했었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크리스탈 팰리스를 이기면서 타이틀을 확정지었다. 아자르가 찬 페널티킥을 줄리안 스페로니가 막아냈지만 리바운드된 공을 집어 넣으면서, 첼시는 시즌 통틀어서 고작 171분만이 뒤쳐져 있었다. 그 어떠한 팀도 17번의 클린 시트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클럽 전체의 접근법에 대해서 추진력과 변함없는 믿음이 있었고, 이는 경기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을 뛰어넘어서는 단결력이었다. 메디컬 팀의 부지런함으로 허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던 34세의 테리가 모든 리그 경기에 매 분 뛰게 되었고 모든 경기를 선발로 출전한 3인조 중 한 명이었다. 그 시즌의 PFA 선정 선수가 되었던 아자르가 3인방 중 또 다른 선수였다. 그들은 최소 24경기를 선발로 뛰었던 11명의 선수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리그 시즌에서 그렇게 적은 선수들을 기용한 클럽은 없었다.

 

그리고 무리뉴 체제하에서 첼시는 연이은 우승을 차지했다. 3번이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감독은 크리스탈 팰리스가 리그 타이틀을 준 순간, 그의 커리어에서 평균적으로 한 개의 트로피를 따내는데 34경기가 걸리게 되었다. 이전 클럽에서 아르센 벵거와 펩 과르디올라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파브레가스가 말했다. "그는 제가 전에 함께 일했던 그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훈련을 할 때마다 정신력이 드러납니다. 모든 게임에서 말이죠. 모두가 우리에게 큰 스쿼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팀을 어떻게 운영해야할지 압니다."

 

"한 시즌에 60경기를 치르면서 사흘에 한 번씩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은 감독에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는 안주해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의 커리어를에서 어떻게 우승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기면, 또 이기고 싶죠. 더 많은 것들에 대해서 환상적인 동기를 느끼기 때문에 집에 있는 서랍에는 제 메달들이 있죠. 제 선수들이 경기장에 있으면 더 잘 할 수 있는 두 세명의 선수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왜 경기력이 떨어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모든 것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팔짱을 끼고 좋은 의자에 앉아서 차분하게 경기력이 올라오기를 기다려야 하나요? 아니죠, 저는 일을 하고, 반응하고, 분석해서, 제 선수들이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라면 저는 변화를 꿰해야죠."

-조제 무리뉴 2015년 8월 29일 크리스탈 팰리스전 홈에서 2-1로 패배한 후.

 

이어진 완벽한 폭풍은 그 여름의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리그 26번째 승리를 거둔 후 마지막 날에 트로피를 들고 퍼레이드를 벌인 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대회에서 54경기를 치렀고, 리그컵과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한 후 선덜랜드전에서 축하를 벌인지 1주일도 안되어 방콕으로 가서 태국 올스타전을 상대로 친선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의 순회 경기는 3일 후에 83,598만명 앞에서 시드니 FC를 상대하는 두번째 경기가 잡혀있었다.

 

첼시는 시즌이 끝난 후 하는 투어를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쨌든, 첼시 선수들은 국가 대표팀으로 여름 토너먼트 경기에 항상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정기적인 리그 경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후, 무리뉴는 프리시즌을 위해서 7월 14일 까지 코밤으로 그의 선수단이 복귀하는 것을 연기하는데 분명히 기여를 했다.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몬트리올에 있는 훈련 캠프장으로 출발했고, 프리시즌 토너먼트인 국제 챔피언스 컵의 세 개의 경기에 출전했다. 이미, 계획은 시도하고 신뢰되던 것으로부터 변질되었다.

 

감독은 언제나 미국에서 프리시즌을 보내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자신이 선호하는 베벌리 힐즈 호텔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Sunset Boulevard 주변의 UCLA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훈련장에 선수들을 투입시키는 것을 즐겼다. 예외적으로 이 여정에서 첼시는 몬트리올의 캐나다 국경을 넘어가면서 경기를 소화했다. 뉴저지에 있는 뉴욕 레드불, 노스 캐롤리나의 샬롯에 있는 PSG, 워싱턴 DC 외곽의 페덱스필드의 바로셀로나와 경기를 치렀다.

 

그들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도 특별히 호화롭지는 않았다. 그 현장은 건축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투어가 시작될 때 팀의 기지에 도착한 기자들은 리셉션에서 임시 침대에 누워 마사지를 받고 있는 이바노비치를 우연히 발견했다.

 

무리뉴는 상황이 이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분위기를 뛰기 위해서 프리시즌 투어에서 가벼운 농담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전년도에 26명의 선수단이 오스트리아의 벨덴으로 떠났을 때, 그와 그의 코칭 스태프들은 해외에서 2주 내내 물폭탄 전쟁을 벌였다. 감독이 호텔 발코니에서 아래층 테라스에 있어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동료들에게 양동이를 비우면서 시작된 일은 무리뉴와 그의 수석 코치인 루이 파리아와 실비노 로우로가 군사적으로 치밀하게 매복하고 탈출하고 심지어 미끼 행위까지 벌이면서 현지 상점에서 물총을 사들이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몬트리올에서 사기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가게 되었다.

 

그의 장난에는 희생자가 필요했고, 예외없이 첼시 TV의 여행 스태프들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여행 초기에 헤드 코치는 훈련 구장의 측면에 8개의 의자를 "비행기 좌석구성"으로 배치를 해두었고, 두 개의 파일럿 자리와 한 명의 후방사수가 등을 돌린채로 진행을 해나갔다.

 

그는 전체 선수단을 서서보게 하면서 테리와 파리아를 포함한 7명의 일행에게 자리를 배정했고 마지막에는 채널의 진행자인 리 파커에게 중앙에 있으라고 했다. 그런 후 선수들은 이것이 일종의 팀의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연습이라고 믿고 지켜봤지만, 무리뉴는 즉흥적으로 조종석 앞으로 가서 "왼쪽으로 돌려!"(그가 돌리면 선수들이 따라했다.), "오른쪽으로 돌려!", "6시 방향에 있는 적들을 향해"(후방시수인 파리아가 기관총을 쏜다고 상상을 하면서) 등의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좌석에 자리 앉은 8명의 선수들은 충실히 따랐다.

 

무더위의 날씨에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서 양복을 빼입고 온 파커에게는 불행이도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게 되었다. 훈련이 강화되자 무리뉴는 실비노에게 신호를 내렸고, 실비노는 임시 객실의 중앙 자리에 있는 그에게 얼음물 한 바구니를 쏟아 부었다. 가엾은 파커는 카메라 앞에 서서 그의 흠뻑 젖은 몸을 정리해야 했다. 그는 재판장에 있는 명예로운 존재처럼 생각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선수들에게 약간 가벼운 안도감을 주는 조제만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때 참석자들 중 한 명이 말했다. "프리시즌은 치열합니다. 이것은 가차없습니다. 때로는 긴장감을 누구러뜨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여름은 다른 때보다 훨씬 강렬했다. 투어 파티는 선수들마다 참여하는데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다. 코파 아메리카에 참여했었던 선수들 중에서 디에고 코스타는 레드불에게 완패를 당한 후에 합류를 했고 돌아와서 약간 그가 과체중이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오고 간 사람들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 챔피언들은 런던으로 돌아오자마자 커뮤니티 쉴드를 준비해야 했는데 준비기간이 고작 이틀밖에 없었다. 그들은 다리가 후둘거렸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아스날에게 완전히 패배를 당하게 되었다. 벵거가 감독한 아스날은 지난 11년동안 무리뉴가 맡은 팀을 상대하면서 14번만의 시도로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홈에서 피오렌티나를 상대하는 또 다른 경기가 있었고, 프리시즌 기간에 짧은 일정동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빡빡한 일정은 혼란스러움을 야기시켰다.

 

웸블리에서의 부진은 새로운 시즌의 첫 몇 경기로 이어지게 되었다. 다른 팀들은 더 많은 준비를 했고 더 많은 그라운드를 누볐다. 첼시의 출발은 시작부터 테이블의 낮은 중간 순위 속으로 처하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결코 실제로 회복되지 못했다.

 

티보 쿠르트아가 바페팀비 고메스에게 프로답지 못한 파울을 저지르면서 퇴장당한 후, 개막전 경기에서 스완지는 뒤쳐져 있다가 무승부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기들의 결과는 (나중에 더 많이) 정지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첼시는 패배에만 대처를 잘했지 이 상황을 구해내지는 못했다. 맨체스터 시티거 지출한 돈으로 인하여 폭발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시점에서 마티치는 감을 잃었고, 이바노비치는 허우적거렸고, 테리는 무리뉴 휘하에서 177경기 만에 처음으로 교체되었다. 테리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과의 승리한 경기에서 퇴장당하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무리뉴의 200번째 경기였던 크리스탈 팰리스전에 클럽이 홈에서 두번째 패배를 당하는데 일조하게 되었다.

 

반대로 감독은 선수들의 태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비틀거리는 출발은 위기의 징조를 띠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