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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의 첼시 2기 시절: 우승부터 강등권까지... 경질되기까지의 과정-2편-

스테이플우드 2021. 4. 25. 14:55

By Dominic Fifield Dec 14, 2020/원문보기(디 애슬레틱)

 

"압박이요? 압박은 도망치는 사람들이나 느끼는거죠. 저는 제 일이 즐거워요. 비록 결과가 제 커리어 중에서 최악일지라 해도, 첼시를 책임지게 된 것은 기쁘고 영광이죠. 저는 압박감을 받는다는 느낌이 없어요. 제 자질과 지위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저는 그 상황에 잘 대처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감독직에 최고의 적임자죠."

-조제 무리뉴 2015년 9월 12일 에버튼에게 3-1로 패한 후.

구디슨 파크에서 풀타임이 지나고 무리뉴는 터널로 몰래 빠져나갔다. 29년 만에 최고의 시즌에서 시작해서 첼시의 최악의 시즌으로 치닿게 된 것은 그의 자존심을 자극하게 되었고 "돈으로 사랑을 살 수는 없다"는 연설문을 두고서 공분을 사게 되었다. 50파운드짜리 가짜 지폐가 첼시의 더그아웃 주변에 흩뿌려지게 되었다. 경기장 밖으로 나온 존 스톤스는 편안한 승리를 한 후, 현지 팬들이 기뻐했고, 그가 그라운드의 네 모퉁이를 돌자 오랫동안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그는 글라다이스 스트릿의 중심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스톤스는 그해 여름에 첼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서 비드가 된 바 있다. 잉글랜드 센터 하프에 대한 그들의 금액은 £20m에서 £26m, £30m로 점점 이적료를 높이면서 제안을 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이적 요청서를 제공한 후, 최소한 £35m의 가치가 있는 네번째 선수가 될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그래서 에버튼의 회장인 빌 켄라이트는 이적상황을 억제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와 감독인 로베르토 마르티네즈는 스톤스를 만나 지금은 그가 떠날 때가 아니라고 확신시켰다. 이적 데드라인을 앞두고 발표된 성명서에는 21세의 선수는 NFS이며 "우리의 1군 선수단에 높이 평가되는 멤버로 남을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2014년 첼시의 이적시장 효율성이 우승 타이틀을 쥐게 된 성공의 열쇠였다면, 1년 후에는 다소 뒤죽박죽이 된 첼시의 전력 보강 시도는 시즌 초반 부진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충분히 좋은 자원들로 대체가 되었다. 라다멜 팔카오가 드록바의 백업 역할을 맡기 위해서 임대로 합류했다. 이스미르 베고비치는 3개월짜리 부상을 끊게된 페트르 체흐를 대신하여 1군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큰 희망이었던 어린 선수인 바바 라만은 필리페 루이즈가 아틀레티고로 되팔리면서 확보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수준 이하의 거래들이었다. 이야기의 소용돌이는 앙투안 그리즈만과 코케, 폴 포그바, 그리소 스톤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세간을 떨게할 정도의 대형 이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소한,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무리뉴와 파브레가스의 전화 통화로 확신을 받은 후, 8월 중순에 바르셀로나로부터 £21.2m에 계약을 맺을뻔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그를 뺏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무리뉴는 페드로를 확보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왜 우리가 프리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비즈니스를 하지 않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순간에 우리는 약간 제한이 있습니다."

사실대로라면, 이적시장에 남아있는 것에 엄청난 지출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아스날은 경쟁을 위해서 충분한 지출을 했고, 전년도 준우승자였던 맨시티는 라힘 스털링과 케빈 데 브라이너를 상대로 £100m 상당의 이적료를 지출했다. 첼시는 재정적 페어 플레이 규제를 의식하고 있어서 아카데미에서 떠오르는 젊은 재능을 가진 어린 선수들에게 확신하면서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이미 우승을 차지한 스쿼드를 자랑하고 있었다. 페드로와 같은 한 두명의 추가 영입된 선수들로 아마 충분했을 것이다. 스톤스는 두번째로 중요한 영입 대상이었다.

무리뉴는 분명히 지난 시즌이 끝나갈 무렵에 모든 경쟁자들을 긴장시키기 위한것에 대해서 그의 의사를 보드진에게 전달을 했었다. "그는 능력있는 굉장한 선수를 매번 사드릴 수 있는 수표덩어리 감독입니다." 선수단과 가까운 또 다른 인물이 말했다. "일이 약간 잘못되어 가면, 마이클 발락이나 디디에 드록바와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선수들을 데려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경기의 사기를 올리도록 동기부여를 하게합니다. 조수가 차오르면 모든 배가 떠오르기 마련이죠."

"그는 우리가 이적시장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보드진들에게 동의했지만, 결국 그는 이미 우승을 경험했던 팀에 거의 같은 스쿼드를 운영하는데 익숙하지 않았고 다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그 시즌에 그에게 또다른 기이한 요인이었습니다."

스톤스가 옵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첼시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에제키엘 가레이, 모나코의 아이멘 압덴누르, PSG에서 마르킨호스, 아틀레티코 빌바보에서 아이메릭 라포르테, AS로마의 코스타스 마놀라스를 영입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이 첼시에서 다 뛴 시간의 합이 1분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에도 불구하고, 마감일이 째깍째깍 다가왔기 때문에 두 명의 센터 하프들과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클 헥터는 레딩에서 400만 파운드로 합류했다. 이 24살의 선수는 코밤의 식당에서 무리뉴와 잠깐 마주쳤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발전을 주시할 것이며, 너가 열심히 해야한다고요." 그가 첼시에서 신체적으로 계속해서 발전하기를 기대했지만 임대로 챔피언쉽 클럽으로 돌아가기 전에 본지에 말했다. 세네갈의 국가대표인 파피 질로보지는 2년 동안 영입 부서의 추적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낭트로부터 270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었다. 그는 26살이었고, 그의 거래 마지막 12개월동안 셀틱에서 그에게 관심을 가졌었다. 첼시에서 그는 4명의 수비수들 사이에서 팀의 백업 자리에 경쟁을 하면서 만족해야 했던 비교적 노련한 노장이었다.

현실에서, 그는 끔찍한 늪에 빠져버렸고 무리뉴는 깊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첼시에 도착한지 며칠만에 그는 팀원들과 몇 차례 훈련을 했고, 클럽은 챔피언스 리그 스쿼드에 그가 포함되는 것을 반대했다. 런던 선수들과 함께한 그의 커리어는 리그컵 월솔에서 카메오로 60초로 나온게 다였다. 1월에 그는 베르더 브레멘으로 임대되었다. 첼시는 이듬해 여름에 그를 팔았는데 선덜랜드와 800만 파운드에 계약을 맺은 것은 그라노브츠카야의 협상력의 흔적이었다.


"저는 제 의료진들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벤치에 있는 의료진이나 비서라고 할지라도 경기를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경기장에 한 명의 선수가 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만약 당신이 한 선수를 돕기 위해서 경기장으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그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만 합니다. 저는 아자르에게 심각한 문제가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아주 피곤했을 뿐입니다. 제 의료진이 세트피스 후에 카운터 어택을 가할 8명의 선수를 저에게 남겨줬네요."

-조제 무리뉴 2015년 8월 8일 스완지 시티와 무승부를 한 후에.

닥터 에바 카네이로는 2009년에 첼시에 합류했다. 그녀는 Bisham Abbey에 있는 영국 올림픽 의학 연구소에서 집중 재활치료를 배웠고 영국 스포츠 훈련 프로그램에서 일하면서 매우 존경을 받았다.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그녀는 연이은 1군 감독들에게 선택을 받아 벤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정기적인 의료진이었다. 2014년에 그녀는 수석 메디컬 디렉터로 승진을 했다.

개막일 오후 7시 20분쯤에, 스완지와의 광란의 시합이 중단되면서 첼시가 평등함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스완지의 주장 애슐리 윌리엄스가 에덴 아자르에게 태클을 가했다. 레프리 마이클 올리버는 수비수에게 옐로우 카드를 꺼냈고, 아자르가 잔디밭에 누워있는 동안 벨기에 선수를 두 번이나 확인을 했고, 첼시 벤치에서 의료진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맨 처음 터치라인을 넘은 사람은 물리치료사였던 존 피어른이었고 뒤따라서 닥터 카네이로가 들어왔다. 심판에 의해 일단 경기장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들은 부상당한 설수를 돌볼 의무가 있다.

 

더그아웃의 가장자리에서 손을 모으면서 경기의 긴장감에 사로잡힌 무리뉴는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건지 깨닫는데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마챔내 그가 알아차리게 되면서 화가 폭발했다. 그는 두 번이나 격렬하게 스태프들 보고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른 다음, 자신의 벤치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나중에는 고용 재판소의 목격 진술로 그가 "창녀의 아들"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닥터 카네이로는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알았기때문에 그녀의 뒤에서 그가 "창녀의 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단호하게 진술했다.

헤드 코치는 그가 좌절했다는 듯이 오른쪽 팔을 경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왼쪽 팔을 흔들었다. 아자르는 치료를 받으면서 일어나 발을 질질 끌며 터라인으로 나가서 더그아웃의 긴장된 눈초리를 받으면서 경기를 다시 뛰기 위해 들어갔다. 몇 초를 남겨둔 첼시는 스완지의 깊은 곳에서 공격할 수 있는 프리킥을 찰 기회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역습을 두려워하며 좀 더 상대방 진영쪽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무리뉴는 벤치로 돌아오는 닥터 카네이로에게 화를 내면서 화풀이를 했고 그녀는 그에게 말대답을 했다. 대조적으로 피어른은 그의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첼시의 감독은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두 명의 스태프를 두고서 "충동적이고 순진하다"면서 맹렬히 비난을 했다.

이 사건은 당시에 당혹스러웠다. 전날에 4년이라는 장기 계약을 맺었던 무리뉴는 전반전에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격분했으며 쿠르투아가 결정적인 골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경기장에 긴장감이 흘렀다. 일부 사람들은 경기 후 코멘트가 허술한 출발에서 타이틀 방어에 대한 관심으로 흘러가는 것을 돌리기 위한 시도라고 봤다. 이건 전형적인 주의를 다른데로 돌리는 전술이다.

아마도 두 개의 가설이 다소 이점이 있지만 다른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무리뉴 특유의, 사실 별로 잘못한게 없는데 그 사람들에게 따끔한 비판을 가하는 위험한 습관에 대해서 습관에 초점을 맞췄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을 자극해서 자신의 생각을 뒤엎게 하려는 시도로 말이다.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겉으로 보기에 정당한 이유가 없어보이는데 괜히 날뛸 수도 있다면서, 적어도 때때로 그와 지내면서 일어난 일들의 일련의 경험들로 알게 되었다. 이것들은 사실상 드레싱 룸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는 암호 메세지였고, 아무리 그들의 그의 반응을 부당하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불꽃이 튀긴 사람들은 불평 없이 공개적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그는 사적으로 설명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심지어 사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묵인해야만 한다. 그는 완전한 충성심을 원했다.

여름 초, 첫 프리시즌 훈련 세션 중 하나에서, 그는 테리와 카힐의 흩뿌리는 두 서너번의 패스를 콕 찝으면서 "너네가 계속 공을 내주면 새로운 두 명의 센터백에게 1억 파운드를 쓰겠다."며 위협했다. 그들은 그 말을 경청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각자 게임을 향상시켰다. 그 후 훈련 세션의 집단적인 퀄리티는 높아져갔다.

이제, 훈련장에서 부주의한 것에 질책하는 것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꽉 찬 관중들을 앞에 두고 그들의 의무를 다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진들을 호되게 비난을 하는 것 사이에는, 특히 선수가 잠재적으로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주먹구구식으로 예상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닥터 카네이로는 터치라인에서 응수를 하면서 이것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그녀의 첫 공개 발언은 경기 다음날 페이스북에 올린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에 감사를 표합니다"라고 쓴 글이었다. 그녀가 언급한 메세지는 무리뉴의 괴롭힘에 맞서서 자신의 페이스를 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촉구한 사람들로부터 온 것이며, 이를 인정함으로써 그녀는 이 사건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 날, 그녀는 더 이상 1군 팀의 구성에 관여하지 않으며 "조정된 역할"로만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피어른도 최전방 역할에서는 제외되었다. 감독은 그 두사람의 배제가 자신의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피어른은 자신에게 가해진 운명에 대해서 참았지만, 닥터 카네이로는 9월에 첼시를 떠났고, 10월 말에 첼시를 상대로 건설적인 해고*와 계약위반 소송에 착수했으며, 무리뉴가 자신을 퇴출시키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에 성차별과 괴롭힘에 대한 자료를 제출했다. 이것은 2016년 여름에 발생된 재판을 자극하게 되었다. (건설적인 해고:근무 환경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직장을 떠나게 되는 상황)

이 사건의 흉터로 인한 갈등으로 닥터 카네이로는 1년 동안 사건의 입방아에 오르 내리게 되었다. 그녀는 첼시를 떠난 후 온라인에서 살해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의 팀과 함께하는 무리뉴의 올가미는 추악한 뒷배경이 있었다. 구단 측은 감독의 재임기간이 흐뜨러지게 되는데 기여하거나 선수 그룹 내 권위를 인식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비도덕적인 일이었고, 불필요해 보인, 확실히, 동료들에게 값비산 대가를 치르게 했다. 좋지 않은 결과의 장송곡과 FA의 제재는 진행중인 소송 사건에 영향을 주게된 흠집이 되었다.

비록 FA의 독립 이사진이자 참여 자문 이사진인 헤더 랍바츠는 나중에 FA가 조사에 착수하면서 의료진을 인터뷰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포르투갈인은 FA의 조사에 따라 클럽 의사에게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는 혐의는 벗어나게 되었다. FA는 카네이로 박사가 원래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았고, 그녀의 변호사들에게 증거를 요청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지적했다. 그렉 다이크 회장은 무리뉴가 "개인적인 판단과 공개적인 행동의 실패"를 보여왔다며 사과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고용 심판소 첫날 제기된 뼈있는 주장들은 사실 양측이 의심과 불신이 더 오래 지속되어왔음을 시사했다.

 

닥터 카네이로의 변호인단은 여성 탈의실이 부족했고, 그녀는 클럽의 소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으며, "동료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성적으로 노골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스완지와의 경기 후에 그라노브츠카야와 의료진 간의 문자 교환을 언급했으며, 디렉터는 다음과 같이 제안을 했다: "사람들은 당신이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겁니다. 조제를 아는 사람들 또한 그가 고함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공개적으로 공격이 허락되는 연봉을 받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두 직원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은 좋은 사람이고, 한 명은 나쁜 사람이죠."라고 변호사들이 첫 변론에서 말했다. "나쁜 직원은 좋은 직원이 가진 꿈에서 벗어나게 하고 고용주는 그것을 범추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직원은 직업적 의무를 수행했다고 호되게 꾸짖으며 성희롱하면서 품위를 떨어뜨렸습니다."

클럽의 법무팀은 이 의사가 "도발적"이었다고 주장을 하면서, 차별적 언어 의혹이 제기되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은 그녀가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120만 파운드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주장했으며, 그녀에 대해서 "일정한 일에 대해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심지어 사건 발생 훨씬 전인 오후에 "자신의 프로필 개발에 점점 더 몰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개변론은 2주동안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포르투갈어 욕설이 갖는 정확한 의미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포함될 것으로 보였다. 당시 무리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첼시의 회장인 브루스 벅과 그라노브츠카야가 모두 자리를 잡은 가운데, 클럽의 임원들의 사적인 문자와 이메일이 폭로될 가능성이 높았다. 닥터 카네이로는 이틀째부터 증언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날 오전을 제외하고는 첼시의 법무팀은 합의안을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 회담은 각 측이 법정으로 재입장을 하기 2시간 전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첼시와 무리뉴의 변호사인 다니엘 스틸리츠 QC는 비밀리에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

첼시는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서 "클럽은 카네이로 박사가 떠나게 된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그녀와 가족에게 고통을 준 것에 대해 거리낌 없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우리는 기록에 따라서,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있어서, 선수들에게 의사로서의 책임을 다했고, 그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다. 카네이로 박사는 항상 그 클럽의 선수들에게 관심을 주는 것을 우선시해왔다. 카네이로 박사는 매우 유능하고 전문적인 스포츠 의사이다. 그녀는 클럽 의료팀의 소중한 멤버였고 우리는 그녀가 미래에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제 무리뉴에게도 또한 1군 의사팀으로서 보여준 훌륭하고 헌신적인 지원에 대해 카네이로 박사에게 감사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응원한다."

그 의료진은 이 거래의 일환으로 성차별과 괴롭힘에 대한 그녀의 주장을 철회했다. 그녀는 현재 런던의 할리 거리에 있는 스포츠 메디컬 그룹의 스포츠와 운동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피어른은 2016년 3월에 벤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수석 재활 전문가 중 한 명으로 클럽에 남아있다.


계속... 원래 이어지는 사우스햄튼까지 쓰려고 몇 문단 번역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길어서 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