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뉴스 번역/애슬레틱 특집

[디 애슬레틱] Inspired by you: 경기를 절대 뛰지 못하는 골키퍼들

스테이플우드 2021. 3. 10. 21:07

Dominic Fifield Feb 8, 2021/원문보기(디 애슬레틱)

 

이것은 우리가 독자들의 질문에서 영감을 받은 일련의 기사들의 일부이다. 1군팀 축구보다는 백업을 선택한 골키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요청을 해주어 이 작품에 영감을 준 Zach D에게 감사드린다. 

 

백업 지원에 대해서 고려를 해볼 때, 엘리트 레벨의 프리미어리그 클럽들에서 초점은 3옵션, 4옵션 골키퍼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선수 명단 깊숙히 묻혀져 있는 이름들은 들어본 적이 있는듯 하고, 커리어가 단절된 인재이거나 자랑스러운 구단에서 희미한 존재감의 선수로서 경기날을 보내게된다. 경기 전에 어렴풋이 낯익은 얼굴들이 경기장에서 반복연습을 하는 장면이 있지만 이후 벤치에서 같은 선수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리처드 라이트는 한때 아스날에서 데이비드 시먼의 후임으로 발탁되었고 20대 중반에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6년 동안 셰필드 유나이티드와 세 번째로 입단한 그의 고향 클럽인 입스위치 타운에서 세 번의 경기만 출전하였다. 그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서열상으로 조 하트, 코스텔 판틸리몬이나 윌리 카발레로보다 뒤쳐져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였다. 스튜어트 테일러는 아스날, 아스톤 빌라, 맨체스터 시티, 그리고 사우스햄튼 등에서 명단에 있는 동안에 정기적인 기다림만 있을 뿐 골키퍼로서 영원히 출전하기 못했다. 결국 21년 프로 생활 중에서 75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그의 지난 8번의 리그 시즌 동안 7경기만을 뛰었고, 4개의 다른 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좀 더 최근으로는, 거의 둘이 합쳐서 1,200분의 경기를 뛴 잉글랜드 국가대표 수문장 로버트 그린과 스콧 카슨이 있다. 그들은 기용되지 않은 선수로서 잠시나마 정기적인 게임을 치렀었다. 카슨은 시티에서 2시즌 임대 생활을 보내는 동안 챔피언쉽 더비 카운티에서 정기적으로 경기를 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최근 써드 키퍼로 선택된 선수에 대해서 "라커룸의 또 다른 주장"이라고 주장했으며, 드문 경우이지만 에데르송과 잭 스테펜을 정신 바싹 차리게하는 칭찬을 쏟아냈다. 그렇긴 하지만, 그의 시크릿 산타로 변한 그의 팀 동료들 중 한 명은 35살의 선수에게 에티하드 스타디움의 투어를 안내하는 선물을 주었다. 그는 카일 워커가 클럽에서 더 자주 골문을 지켰던 아레나를 마침내 경험할 수 있었다. 

 

카슨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펩 과르디올라 감독으로부터 배우고 있다.

 

카슨의 재미있는 면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왜 어떤 골키퍼들은 경기를 뛰지 못하는데 행복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자신의 커리어의 황혼기 속에서 경기 시간이 부족한 것에 대한 상당한 위로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꼽을 수 있는 입장에 있다. 지난해 리버풀에서 있었고 지난 20년 동안 챔피언쉽에서 정기적으로 활약했었던 앤디 로너건은 시즌 내내 머지사이드에서 알리송과 아드리안과 호흡을 맞추면서 국내 최고의 영예인 피파 클럽 월드컵과 유에파 슈퍼컵을 커리어에 추가하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프리미어리그에 있으며, 지금은 웨스트 브롬위치 앨비온에서 써드 키퍼로 있다.

 

그렇다하도 그들은 극단적이다; 엘리트 수준의 선수들은 엘리트 수준의 임금에 근접하는 것을 받는다. 특히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이들 키퍼와 비교해서 말이다.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서 써드 키퍼들은 특히 재정적으로나 트로피의 측면에서 성취감을 덜 느끼며, 선택의 희망이 전혀 없는 역할을 맡는 다는 것은 고통일 수 있다. 심지어, 정신적 외상을 초래할 정도이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그들이 적절하게 경기에 참여하는 것 보다는 훈련 루틴에 국한되는 것을 만족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써드키퍼들이 한때나마 갈망했던 모든 것이 싫어지는 순간이 주말에 경기장에서 연습한 모든 것을 보여줄 기회조차 없고 일주일 내내 일만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들이 단순히 이러한 운명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하는 것은 거짓이다. 

 

경기를 뛰는 것이 절대로 행복하지 않은가? 말도 안되는 개소리 하지 말아라.


물론, 예외라는 것은 항상 있다. 

 

34세의 폴 존스는 풋볼 리그와 컨퍼런스를 통틀어서 8개의 클럽에서 17년 동안 421번의 시니어 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성립하기 위해 시도하는 새로운 아이였고, 감독들이 의지할 수 있는 노련한 프로 선수였다. 더 늦게, 그는 이어지는 클럽들에서 서열에 뒤쳐지는 삶을 견뎌냈고, 지금은 경기에 복귀하기 위해서 호출을 기다리고 있다. 요컨대, 그는 모든 것을 보았다. 

 

"그리고 저는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을 완벽하게 행복해하는 골키퍼들 있는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저에게는 뽑히지 못한 것에 대해서 정말로 안도해하는 클럽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모든 슈팅 훈련과 작은 팀으로 나눠서 게임을 하는 훈련장 속의 골키퍼가 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죠. 그들은 경기날이 되면 오는 모든 압박에 초점을 맞추면서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뛰었던 경기들에 이름을 붙인다는게 불공평할 겁니다. 그리고 그의 성격이 경기를 뛰는 것은 편하게 느끼지 않지만 훈련하는 것은 좋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부상을 당해서 그가 결국 선발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골키퍼 코치와 얘기를 나눴는데, 우리 둘 다 충격에서 벗어날거라는거에 동의했습니다. 아니면 그가 최소한 경기 중에 부상을 당해버리면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똑바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그랬겠죠. 그는 단지 모든 사람들이 그의 경기를 분석하는 압박감의 수준을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주목받지 못하는 3옵션, 4옵션이 그를 위한 것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그런 것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모든 것이 경기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토요일 오후나 화요일 밤에 클린 시트를 유지해서 승리를 쟁취해 경기장을 걸어나가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저는 상대팀의 득점을 막는 것에 아주 많은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이 경기는 모든 것이 초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서 벗어나게 될 때, 많은 다른 선수들로 인해서 막혔었던 1군 팀으로 들어갈 기회를 찾게되고 심지어 손해를 끼치는 벤치에 앉지 않아도 됩니다. 거기에는 너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서 앉아있게 돼죠."

 

존스는 이번 시즌에 클럽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오고 있다. 

"저는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제 커리어에서 내린 결정은 제 몫입니다. 이제 저는 나이를 점점 먹어가고 있고, 잠재력을 가진 어린 선수들과 판매할 가치가 있는 선수들이 랭크를 통해서 위로 올라가는 것에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저 괜찮은 커버력을 제공하는 '경험 많은 골키퍼'로 인식된다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스며드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일단 숨을 돌리고 나면, 저는 클럽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새로운 역할에 대해서 잘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것을 갈망하고, 경기에 출전하고 싶고, 경기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본능들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걸 믿어주세요. 이런 것들은 항상 존재합니다."

 

존스의 커리어는 찰튼 애슬레틱과 레이튼 오리엔트의 유스 시스템에서 시작했고 엑스퍼 시티에서 시니어 선수로 번창했다. 그는 한때 67,500명의 사람들이 있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FA컵 맨유를 상대로 무득점 무승부의 클린 시트를 이끈 적이 있었다. 그는 재건된 웸블리 경기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페널티를 막은 최초의 선수가 되었고, 1년 후에는 풋볼 리그로의 승격을 확보하기 위해서 또 다른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를 완벽하게 막아냈었다. 그는 챔피언쉽에서 피터버러 유나이티드에서 한 시즌을 보냈고, 이어서 크롤리 타운과 포츠머스에서 뛰었다. 

 

이런 것들이 하루를 마감할 때 그가 애정을 가지고 삶의 뒤를 되돌아볼 때 느낄 수 있는 전율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리그 출전은 2016년 4월에 폼페이에서 임대로 크롤리로 돌아와 AFC 윔블던에서 우승하여 클린 시트를 한 것이었다. 그 후, 그는 3개의 디비전에서 4개의 클럽에 있었다. 노리치 시티, 임대로 다시 온 엑스터, 플리트우드 타운 그리고 셰필드 웬즈데이다. 리그컵에서 두번을 뛰었고 풋볼리그 트로피에서 3번을 뛰었다. 그는 존 루디, 마이클 맥거번 그리고 나중에는 앵거스 건과 1군 팀의 자리를 두고서 골키퍼의 수비력때문에 삶의 어려움을 겪었다. 

 

"저는 노리치에 발을 들여놨을 때 상황을 알았지만 그때는 도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제 커리어에서 계약한 가장 큰 클럽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하부리그의 엑스터나 '소규모의' 크롤리에서 뛰었던 폴 존스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좋은 클럽에 있었고 제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다른 선수들ㅇ게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것들이 제가 한 일입니다. 네, 저는 잉글랜드 축구 체제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던 루디를 상대했고, 맥거번은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유러피언 챔피언쉽에서 막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 모든 존재들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제 주변 사람들인 아버지나 가까운 친구들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아마 제 행동이 변했다고 느꼈을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기분이 쓸쓸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축구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이런 상황들을 대처하기가 힘들었고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존스는 30세에 2부리그에 있는 노리치로 이적한 것이 헛된 기대였음이 판명되었다. 그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결정을 하기 위해서 잠시 살펴봐야만 했다. 그곳에서 조언을 제공하는 인물은 특정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아담 셀즈는 비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10대 시절 첼시, 크리스탈 팰리스, 브렌트포드의 골키퍼였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찰튼에서 유스들을 코치했고 이후 팰리스에서 2013년까지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으면서 언제나 골키퍼들에게 집중했다. 지난 20년 동안, 그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라 리가 등에 엘리트 골키퍼들이 장비를 판매하는 브랜드인 셀즈 골키퍼 프로덕트를 운영해왔다. 딘 헨더슨, 닉 포프, 빈센트 과이타, 칼 달로우가 모두 그의 고객이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빅토르 발데스와 레알 마드리드의 케일러 나바스를 위한 킷도 제공해왔다. 

 

그가 수년간 쌓아온 인맥들을 볼 때, 아마도 51세의 이 사람이 FA에 등록된 중개인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으며 이는 그가 매일매일 하는 사업에 딱 맞는 역할이다. 그는 에이전트라기 보다는 해결사이며 이적하는 골키퍼들에 관해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저는 이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저는 매일 사람들에게 글로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거나 유명해지길 원하는 제가 지도한 선수들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은 제게 클럽에서의 상황과 사고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듣기만 하기 때문에 정보의 허브이고 좋은 테스트 대상이 됩니다."

 

벨기에 레전드인 장마리 파프와 함께한 셀즈(오른쪽)

"시간이 지나면서, 키퍼들은 클럽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도움을 구하러 저에게 오기 시작했고, 제가 무엇을 들었는지 물어봤습니다 . 그리고 키퍼들을 데려오거나 그들이 옮기기를 원하는 선수들을 위해서 계약을 수정해달라고 물어보는 클럽들이 있습니다. 저는 어디를 봐야할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절대로 선수에게 다가가서 그를 대표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선수에게 상황을 부풀려서 말하거나 클럽에게 지나친 약속을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장을 잘 알고 있고, 만약 그들이 조언이나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서 무언가를 생각해낼겁니다."

 

그는 자신감이 훼손된 선수들 격려하는 고민 상담가로 활동해왔다. 각 클럽에서 서열에서 밀린 사람들이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온다. 그는 클럽에서 특히 게임을 뛸 가능성이 거의 없는 3옵션, 4옵션 선수들에게 이러한 특정한 역할을 받아들기이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통해 이야기한다. 일부 선수들은 안심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선수들은 더 큰 그림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들이 경기를 뛰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수들이 있을겁니다." 그가 말한다. "그들은 매우 추진력이 강해서 팀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새로운 클럽의 상황과 관계없이, 혹은 그들이 오랫동안 있었던 팀에서 지위를 잃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을 지지합니다. 인내심을 가지라고 설교해야만 하죠. '너의 순간이 오길 기다려, 그리고 그 때가 오면 반드시 꼭 잡아.'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키퍼들은 이것을 알아듣고 관점을 키웁니다: 오직 단 한 명만이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에게 자극이 되고, 그들을 굶주리게 하고 동기부여를 주게됩니다. 

 

"상황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습니다. 칼 달로를 보세요. 그는 훌륭한 골키퍼지만 노팅엄 포레스트를 떠나 뉴캐슬로 간 후, 그는 전력 제외 선수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틴 두브라브카의 폼이 아주 좋았지만 칼은 기다렸고, 스스로를 믿었으며, 결국 기회를 얻어서 지금은 잉글랜드 수문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율리한 스페로니는 피터 테일러 휘하에서 써드 키퍼로 있었지만 그는 클럽에서 끝나지 않는 업무를 하고 있다고 느꼈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고 클럽에서 400경기 이상을 뛰었습니다. 나이젤 마틴은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으며, 그 후 한 번의 부상으로 폴 로빈슨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그는 영국의 골든보이가 되었고 나이젤은 에버튼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고 일관성이 있던 선수가 이적했습니다. 상황이 순식간에 바뀌게 되었죠."

 

"그리고 실제로 그들의 주요 임무는 전적으로 응급 상황에 달려있고, 보다 더 자주 준비의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선수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효과적으로 스폐셜 트레이너들입니다. 30대 중후반이 되면, 클럽은 보험용으로 선수단에 노련한 써드 키퍼를 두게 된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재난이 닥칠 경우, 많은 게임을 해본 선수가 투입되어서 그들에게 닥쳐올 상황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훈련장에서 역할을 충족시킵니다: 보험용이지만 슈팅 연습을 위한 총알받이로서 애지중지합니다."

 

"이제 선수의 관점에서 보면, 앤디 로너건이나 스콧 카슨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글쎄요, 저는 제 선수생활 내내 좋은 수준에서 경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런면에서 누군가에게 증명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이 제 커리어에서 현 단게에서는 더 나을겁니다.' 금전적인 보상이 있을지도 모르고 코치로 갈 수 있는 디딤돌로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우승할 기회가 있도 있습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로 각각 이적한 한 쌍의 선수들은 폭넓은 이력서를 장식하는 영광을 안았다. 로너건은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서 이름을 날린 후 5개의 다른 클럽에서 짧게 활동하고 2019년 여름에 대런 랜돌프에게 대타취급을 받다가 미들즈브러에서 방출당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플리트우드와 블랙풀에서 훈련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셀즈를 만나기 전에 코치로 전향하는 것도 고려하기도 했다. 알리송이 코파 아메리카가 끝난 후 연장된 휴가를 부여받아 리버풀의 골키퍼 코치 존 아흐터베르크의 눈에 들게 되었고, 처음에는 클럽의 미국 프리시즌 투어를 위한 경험많은 백업 키퍼로 흔치 않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로너건은 보스턴의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35,654만명의 관중 앞에서 34도의 찌든 더위 속에서 세비야를 상대로 위르겐 클롭의 팀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10번째로 많이 모였던 관중은 그의 이전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해 초에 로치데일로 임대를 온 선수로 스포틀랜드에서 스컨도르프를 3-1로 승리했다. 

 

투어에서 훈련 세션에서 몸을 던지면서 열중하거나 골키퍼 그룹에서 신참 선수인 퀴빈 켈러허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의 프로다운 모습으로, 그는 한 시즌 장기 게약을 맺게 되었고 유에파 슈퍼컵, 피파 클럽 월드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되었다. 그는 7월에 안필드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가 올라갈 때 뒤에서 흠뻑 젖셔졌지만 시상대에 올랐다. 클롭은 처음에 이 베테랑이 경기장에 발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우승 메달을 받을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서 격분했었다. 

 

리그 우승 당시 리버풀의 골키퍼와 코치들과 함께한 로너건(왼쪽)

그가 말했다. "1년에 걸쳐서 500만번을 훈련을 하는데 최고 수준에서 훈련하지 않는다면 팀이 챔피언쉽에서 우승할 가능성 따위는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타이틀을 땄을 때, 한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그런 만큼 리버풀은 로너건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 해 동안 골키퍼들에게 작은 일들이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단지 팀의 일원이 되고 싶고 5명이 팀을 이뤄서 하는 연습 경기에서 모든 사람들이 '팀에 로너스가 있으면 우린 괜찮을거야'라고 생각하길 원합니다." 그가 말한다. "이것이 제가 갈망했던 피드백입니다. 저는 단지 매일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싶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선수들에게 로너스가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고 그들이 돌아서서 '그는 좋은 키퍼야'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제가 원하는 전부입니다."

 

"보세요, 만약 제가 (선수생활을 하면서) 1군 경기를 해본적이 없다면, 제 동기는 경기를 뛸 방법을 찾는 것이었을 겁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300번 이상 경기를 뛴 경험이 있고, 리버풀에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저는 이것을 해야만 했습니다. 매일 제가 훈련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줘서 사람들에게 인상을 주도록 저를 동기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과연 경험면에서 더 나은 골키퍼였을까요? 네, 100%입니다. 저는 그 해에 알리송과 함께 일하면서 제가 보면서 배운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필사적으로 애썼습니다: 그가 차지하고 있는 포지션, 그가 하는 패스. 훈련에서 그런 식으로 뛰는 것이 더 편할 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게 했습니다."

 

로너건은 이번 시즌 스토크 시티에서 단기 계약을 하면서 배운 것들을 선보였고 크리스마스 전에 토트넘 핫스퍼를 상대로 8강전에서 인상 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활약으로 웨스트 브롬은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약을 맺기로 하여 37세의 선수를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 부름은 리 그랜트에게도 비슷하게 매력적이었다. 셰필드 웬즈데이, 번리, 더비에서 두번이나 주전으로 뛰었던 그는 2016-17 시즌 프리미어리그에 있던 스토크 시티의 올해의 선수상을 잭 버틀란드에게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그가 어렸을 때 응원했던 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조제 무리뉴는 2018년 당시 35세의 키퍼와 150만 파운드로 계약을 맺었고, 처음에는 다비드 데 헤아와 세르히오 로메로의 뒤를 이어 활동했다. 그 후에 헨더슨의 등장은 그를 더 밑으로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맨유는 항상 자신의 지위를 받아들이고 흥할 수 있는 개성을 뽐내는 노련하고 헌신적인 프로 선수를 찾고 있었다. 그렇다, 그랜트는 매주 경기를 뛰지 못했지만 다른 종류의 역할을 즐기고 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밖에서 들여다보면, '와, 이게 무슨 일이지? - 나는 일도 안하고 압박감도 없고 맨유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돈을 버는 이 일을 사랑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게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더 잘 이해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아주 편안한 역할이죠. 제가 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원통함을 느끼는 역할은 아니지만,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일을 잘 하고 있는 이유 중 일부는 밖에서 바라봤을 때 멍청할만큼 뛰는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리 그랜트는 자기가 뛰지 못할거라는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그는 거기에 있는게 행복할거야. 그는 돈이나 모아서 집으로 가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죠. 감독은 척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니요, 저는 경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제가 여기 있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요. 저는 그러한 방식을 정말로 저에게 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고작 2년만 계약했거든요. 이번이 3년째입니다. 그들이 제 계약을 갱신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여전히 제가 경기에 임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 주말에 상을 놓쳤기 때문에 힘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하죠. 체육관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모든 옳은 일을 하고, 자신을 밀어붙이는 것들을 잘 해내가면 마지막에 약간의 성과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첫 해에는 제가 이런 것들을 고심하고 제가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느정도 제 힘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경쟁은 여전히 치열했습니다.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고 이것이 제가 점점 더 잘하게 된 이유입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12번의 경기를 이겼던 그린은 허더즈필드와 첼시에서 벡업으로 선수 커리어를 마쳤다. 그는 실제로 고정 멤버가 아니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우리치오 사리 팀에서 인기 있는 멤버로서 2019년 5월 바쿠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가는 길을 꽉 붙잡았다. 그러나 클럽의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한 해를 보내는 동안 그의 공헌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또한 선수단에서 그의 지위에 독특한 특권을 부여받아 인정받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팀에 오래 있던 선수가 그들의 좌절감을 말하는 것을 훨씬 더 꺼려한 반면에 그는 헤드 코치에게 공개적이고 비판적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대담했다. 

 

그린은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한 첼시 팀의 일원이 된 후 열정적으로 축하했다.

지난 시즌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린은 팀의 폼이 안정되어가고 감독에게 압박감이 가중되는 와중에, 나머지 1군 선수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이탈리아인의 접근 방식을 과감하게 직접 비판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저는 사리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보세요, 당신은 정말로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저는 볼 수 있고, 당신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이 클럽에서 진행중입니다.' 저는 '내가 그에게 따끔한 충고를 줘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말 그대로 했습니다. '당신은 플랜B라는게 없습니다. 당신은 그냥 업무만 보는 감독이죠. 그룹에 있는 선수들은 당신한데 이런 말을 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주 많이 신경을 쓰고 있지만 저처럼 당신에게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이 뭘 어쩔건지, 절 떨구기라도 하든지, 신경쓰지 않아요."

 

그의 고함소리는 15분동안 계속 되었고, 분명하게 사리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억누르고 있었다. "많은 선수들이 그 후에 제가 말한 것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할 수 없던 것을 당신이 딱 제가 원하던 말을 해줬네요.' 분명하게, 만약 그들이 그랬다면, 팀에서 그들의 자리나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명의 수석 코치들, 지안프랑코 졸라와 카를로 쿠디치니는 '훌륭했어요. 우리는 노력해왔지는 우리는 타협해야하는 위치에 있고, 또한 매우 계층적인 형태로 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많은 피드백이 오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이것을 사리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우리는 결국에는 모두 방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고 그는 문 앞에 서있었습니다. 저는 '아, 좆됐네. 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악수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고마워. 누가 회의에서 나를 생각해준건 처음이야."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겁니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재정적인 인센티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한다. 이는 뛰지 못하는 역할을 좀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2012년 여름에 라이트는 서퍽에 있는 집에서 통근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결심하기 전에 프레스턴에서 1년 계약 중에 1주일만을 이어나갔다. 그는 그의 가족이 그리웠고 이스트 앵글리아를 오고 가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레이엄 웨슬리 감독은 "솔직히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용감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면서 클럽은 그를 동정했다. 그럼에도 몇 주 안에 라이트는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으로 군림하는 맨체스터 시티에 합류할 기회를 얻어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그 대안이 디비전, 리그1 또는 리그2에서 헐값을 받으면서 폄하당할 때, 이 사람들이 커리어의 황혼기에 좋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셀즈가 말한다. "만약에 최하위 두 디비전에서 연봉 상한선이 있다면 기껏해야 주당 2,000파운드를 받게 될겁니다. 탑 레벨 수준에서의 써드 키퍼 역할은 일부 클럽의 경우 일주일에 5,000 파운드에서 25,000파운드 정도 됩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백업 키퍼들은 거의 뛰지 않고 주당 40,000파운드를 받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챔피언쉽을 뛰는 1군 키퍼들의 4배정도 받는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뛰지 못하는 골키퍼로서는 2년 정도의 수명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약 18개월이 지나면 그들은 안절부절 못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주중에 운동과 훈련을 한 다음 토요일에 스탠드에 있거나 벤치에 앉아있습니다. 그들의 발은 근질근질하고 어딘가에서 축구를 다시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런 일과들을 아주 좋아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5년 동안 경기를 뛰지 못하고 그냥 침체된 상태로 클럽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해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별이 일어날 때, 그들의 다음 계약이 엄청 큰 쇠퇴라는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그렇게 편안한 지역에 머무르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골키퍼들도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골키퍼 코치들은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인식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그러한 종류의 기간에 따라서 상황을 새롭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선수들이 나가서 스스로 도전할 것을 촉구할 것이고, 따라서 자연스러운 이직도 있을겁니다."

 

라이트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으로 클럽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어서 시티에서의 선수 생활을 끝내고 현재 시니어 코칭 스태프에 고용되어 있다. 첼시에서 8년간 프리미어리그에서 20차례 뛰며 9번이나 다른 관리적인 직책을 맡았던 일라리우는 7년 전에 은퇴를 한 이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코칭 스태프로 있다. "로너건, 스페로니, 카슨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를 수 있죠." 셀즈가 덧붙였다. "이들은 팀 동료로부터 존경을 받고 다른 골키퍼들 뿐만 아니라 리더쉽과 경험에 관해서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단지 3옵션, 훈련장 골키퍼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을 제공할게 있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존스는 최근 두번의 이적에서 비슷한 영향을 끼쳤지만 주장하건데 그의 선수 커리어에 다시 힘을 불어 넣어줄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그의 노력에 대한 좌절감은 노리치에서 한 번의 리그컵 대회를 뛰었을 뿐 어떤 경기 시간을 보상받지 못했다. 그는 고향과 가까운 두 개의 제안으로 방향을 바꿨고 멜 그윈넷과 폴 티스데일에서 다시 일하기 위해 2018년 1월 엑스터에 임대되어 재합류하였다. 그러나 그가 도전하기 위해서 계약한 젊은 키퍼 크리스티 핌은 그의 도착에 자극을 받았다. 

 

임대를 온 선수가 매일 훈련장에서 그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핌은 멋진 시즌을 즐기게 되었고 결국 클럽의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것은 나중에 알렉스 케언스가 1옵션으로 남아있으면서 존스가 1년 계약을 체결한 플리으투드에서 한 시즌 동안 한 것과 같은 일이었고, 젊은 선수들을 다시 한 번 도와주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사실 저는 크리스티와 알렉스가 잘 하는 것을 보고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제가 훈련장에서 스스로를 지도하고, 그들을 밀어 붙이면서 그들의 경기를 끌어 올리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팀에 정말로 제외된 사람이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거기서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그들을 도와줬다고 말할거라고 확실히 생각할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을 더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때때로 그것들이 저를 괴롭히더라도요. 알렉스는 크리스티처럼 결국 그 시즌의 선수상을 탔습니다."

 

"하지만 플리트우드에서의 그 시간은 저를 정말로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게 했습니다. 저는 우울증을 앓지는 않았지만, 그 시즌을 경험하면서, 저는 어떻게 축구 선수들이 우울증을 겪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경기장에서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은 향수병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엑스터에서는 최소한 제가 경기날에 벤치를 달구긴 했습니다. 제가 플리트우드와 계약한 것은 제가 팀에 들어갈 기회가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고 조이 바튼 밑에서 일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기회였죠.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블랙풀에서 살고 있었고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4시간 30분의 여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지 못한 시간이 몇 주나 흐르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런것들이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이건 매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들입니다. 게임의 이면이라고 할 수 있죠."

 

존스가 웨인 루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엑세터를 위해 활약하고 있다.

"연습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냥 거기에서 나오고 싶었습니다. 저는 지역에 있는 체육관에 등록을 했고 그것이 저의 자유였습니다. 트레드밀과 러닝머신을 50분정도 뛰고 약간의 웨이트를 했습니다. 훈련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제가 거기서 어떠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이는 저와 잘 지냈습니다. 제가 틀렸다는 것을 그가 알 수 있었던 1주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분명하게 훈련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저를 팀에서 제외시켰고 저에게 집으로 가서 진지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솔직함에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집으로 차를 몰고간 기억이 없습니다. 제 머리가 맛이 간것같습니다. 그는 또한 저에게 크리스마스 날에 다른 선수들에게도 준 4일의 휴가를 줬습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을 절대 잊을 수 없겠지만, 결국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팀에서 가족들이 있었던 그들은 휴가를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팀 플레이어고, 그룹의 일부분에 속해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제 자신을 자책하면서 예외로 취급받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네, 그때가 제 커리어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습니다."

 

2019-20 시즌에 비정상적으로 길었던 기간 때문에 그를 데려갔던 셰필드 웬즈데이에서는 골키퍼 코치 니키 위버와 노르포크에서 그의 집과 가까웠고 경험이 많은 4옵션 키퍼에게 동정심을 갖고 있었다. 카메론 도슨, 키어런 웨스트 우드, 조 와일드스미스는 51경기를 시작했다. 존스는 모든 경기에서 8번의 출전만 했다. "만약 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면, 니키는 저를 게임에 데리고 가지 않습니다. 이는 제가 토요일 아침에 스쿼드에 있는 선수들과 훈련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 팀이 원정을 떠난다면 저는 집으로 가서 신경을 꺼야했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차라리 경기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게 더 쉬웠습니다. 저는 여전히 언제나 게임 자체에서 나오는 뉴스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제 핸드폰만 확인하고 했습니다. 이 팀이 결국 제가 대표하는 곳이니 그것이 저에게 중요했습니다. 우리가 하프타임때 지고 있을 때, 저는 거기서 한숨을 쉬고, 그 분위기가 다음 주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웬즈데이에서 제 역할은 플리티우드와 마찬가지로 훈련장 키퍼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날 일은 그날의 일이었고 저는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왜 그것이 필요한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숙이, 저는 이런 것을 위해서 축구에 들어온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경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결국, 경기날에 제외된다는 것이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에 오점을 남긴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핸드폰이 예전처럼 자주 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노리치를 떠나던 해에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제가 축구를 많이 뛰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니요, 하지만 엑스터로 임대되기 전까지는 23세 이하 팀에서 축구를 꾸준히 해왔고, 그 후 매주 매치데이 스쿼드에 있었습니다."

 

"또 다른 감독은 제가 노리치 23세 이하팀에서 뛰는 것을 보고선 저에게 '확신을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말하고 있는 게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겼고, 저는 클린 시트를 유지했는데 오후 내내 거의 공을 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를 23세 이하 노리치용으로 판단했습니다. 거기에서는 제가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습니다. 제 선수 생활에서 400여개의 경기를 치렀고,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모두 치렀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 건가요? 이 모든 것이 다 상관없는건가요? 중요한 것은 지난 6개월 뿐인가요? 그런 말을 들으면 신뢰가 사라지기 시작하죠."

 

존스는 지난 시즌 말에 우네즈데이를 떠난 이후 클럽이 없는 상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서 다시 스포츠에 복귀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엘리트 클럽에 포함되지 않는 구단들은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서 유소년 팀 선수들에게 써드 키퍼 의무를 점점 더 맡기고 있다. "저는 6개월 동안 게임을 뛰지 못했고 저는 다시 경기를 치르고 싶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40살까지는 현역 생활을 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 상황이 어떤지 완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좋은 점은 이제 제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저는 사람들이 이것을 읽고서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축구는 당신의 직업입니다. 당신은 일하기 위해서 어디든지 가야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주장을 이해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어린 선수들에게 더 쉽습니다. 저는 젊은 가족들이 있고 노리치에서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변하는 수준은 가치가 있어야만 효과가 있을겁니다. 물론, 만약 스코틀랜드에 있는 클럽이나 북서부에 있는 클럽에서 백업으로 1년, 주급 5천 파운드 정도를 제공한다면, 물론 아내와 의논을 해서 성사시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네의 반대편에서 1주일에 500파운드를 받으면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올 가능성이 없는 곳에서 게임 시간이 될까요?"

 

"제가 저와 제 가족을 다시 한번 더 고통스럽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