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투헬은 04-05년 슈투트가르트 U-19 보조코치로서 조금 다르게 보였다.
31세의 이 사람은 아직 엄격한 채식주의자와 노 탄수화물 섭취 방향으로 가지 않았고, 특히 밋밋한 문화 인류학 교수나 아마도 유명한 건축가의 분위기를 주는 주로 어둡고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니트를 입지도 않았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전직 중앙 수비수는 당시 과도한 업무량으로 향했고 파카와 브릿팝 헤어스타일로 변신했지만, 이런 피상적인 면은 차치하더라도 첼시가 이번주에 고용한 감독은 재능이 뛰어난 개발자와 축구 과학자라는 사이의 완전히 모순이 있는 천재다. 깊게 게임의 세세한 부분을 파고드는 성격뿐만 아니라 자주 동료들을 한계 그 이상으로 밀어넣는 불타는 성격의 소유자다.
투헬은 무릎 부상으로 프로 선수 생활을 망친 후에 그의 울름(Ulm) 감독 랄프 랑닉에 의해 유스 코치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슈투트가르와에서 U-19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전임 상관인 한시 클라이치는 다니엘 뮤렌과 토비아스 샤치터가 투헬의 알려지지 않은 생애에 대해서 "그는 상대방을 해부하는 X-ray 시야를 가졌다"고 회상했다. "그의 경기 계획은 항상 잘 풀렸다"
하지만 그의 거친 스타일은 클럽이 그의 계약을 연장하길 거부하도록 만들었다. 투헬은 아우크스부르크와 마인츠로 이적했고, 그곳에서 다시 한 번 헤드 코치로 19세 이하 챔피언쉽을 우승했다. 2009-10 분데스리가 시즌 초에 마인츠의 크리스티안 단장은 짧은 시간 안에 투입할 누군가를 필요로 했다.-욘 안데르센은 DFB 포칼(독일의 FA컵)에서 더 낮은 리그인 루벡에게 1라운드 탈락한 후 해고되었다-그는 놀랍게도 35세의 유스팀 코치를 선택했다.
투헬은 정교하고 공격적인 축구로 빠르게 명성을 날렸다. 그는 가장 작고 형편없었던 클럽을 고공행진하게 만들었으며 연간 예산이 15m유로에 불과한 팀을 유로파 리그에 두 번 출전시켰다. 마인츠에서 보낸 5년 동안 바이에른 뮌헨, 샬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바이어 레버쿠젠 등 빅4만이 그의 팀보다 승점을 쌓았다. 투헬은 심지어 클럽의 아이콘인 위르겐 클롭보다 더 좋은 기록을 냈다.
마인츠 관중들의 에너지를 한 껏 이용하는 명백한 압박 게임으로 성공을 거둔 클롭과 달리 투헬은 브루스 리의 "내 스타일은 노 스타일"이라는 주문에서부터 영감을 얻었다. 그의 마인츠는 그들의 접근 방식에 잘 적응했고, "생각할 필요가 없이" 상대편의 포메이션의 특정한 강점을 선제공격해서 효력이 없어지게 하도록 각각의 게임을 변화시켰다. 몇년 후에 투헬은 '규칙을 깨는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혼을 쏙 빼놓는 강연에서 개성이 강한 경제학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모든 규칙들(예를 들어 정규화된 시스템, 정기적인 11명의 스타팅 멤버)를 깼었다. 이것이 목적이었던게 아니라 우리가 모든 면에서 열세했고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2014년 여름 그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 완벽하게 훈련된 마인츠 팀은 경기당 6번 포메이션을 전환하여 닿을 수 없었던 펩 과르디올라의 바이언 조차도 경기 운영을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그는 클럽에서 더 이상 정복할 세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사임했고 1년의 안식년을 보냈다. 마인츠는 그 이후로 더 높은 곳 어디든지 데려갈 수 있는 후임자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계속 진행하는 것 또한 실행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라커룸의 인근 소식통은 "투헬이 선수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한 것을 기억했다. "그는 용서하지 않았고 개인적인 원한을 품었다." 마인츠의 골키퍼 하인츠 뮐러는 그를 "독재자"라고 불렀다.
1년 동안, 그의 우상 과르디올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전술에 대한 서로의 집착에 힘입어 우정을 쌓기 시작했다. 투헬은 브렌트포드 구단주 매튜 벤햄을 방문하여 통계학적인 모델에 대해서 배웠다. 그는 또한 Spielverlagerung의 르네 마릭을 포함하여 전술 블로거들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2015년 4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클롭의 뒤를 잇는 후임자가 되었을 때 스카우트 보고서 작성을 의뢰받았다.
투헬은 선수단의 식단을 바꾸었다. 사랑받는 파스타 요리가 통밀 제품으로 대체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멘토 Paco Seirul-Lo가 15년 전 바로셀로나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스포츠 과학자 Wolfgang Schollhorn의 이론인 "다양한 학습"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Schollhorn은 선수들의 실력은 반복적으로 연마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일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변화무쌍한 일련의 문제들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 주요 명제였다.
투헬은 그의 선수들에게 폭이나 깊이가 없는 경기장에서 훈련시켰다. 그는 그들에게 무릎으로 추가적인 터치를 하도록 시키거나, 수비수들에게 그들이 수비수들과 격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테니스 공을 가지고 다니도록 시켰다. 한번은, 그가 공격에서 더 수직적으로 경기하기를 원했고, 그는 코너를 잘라서 훈련 피치의 파이널 써드를 삼각형으로 바꿨다. 훈련은 너무 어렵고 정신적으로 지치게해서 실제 경기가 비교적 쉽게 느껴졌다.
그의 첫 시즌에서 점유율을 기반으로 한 환상적인 자유로운 움직으로 경기를 운영했다. 과로디올라 감독의 분데스리가 독주를 위협하였다. 투헬은 클롭 감독 7년 휘하에서 지쳐보이던 측면을 새로운 경지로 끌어 올렸다. "내 역할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선수들을 돕고 응원하기 위해서 왔다."며 그가 설명했고 축구는 선수들의 게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재능의 조력자로서 아르센 벵거리즘을 사용한다고 스스로를 살폈다.
그러나 이 성공은 이미 미래의 분쟁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었다. 마츠 훔멜스, 헨릭 미키타리안, 일카이 귄도안은 투헬의 혁신적인 지도 아래 너무 좋은 성적을 거두어 더 크고 부유한 클럽들에 이끌려 갔다. 도르트문트는 10대 돌풍을 일으킨 우스만 뎀벨레를 포함한 6명의 유망한 청소년들로 3인방을 대체했지만 투헬은 구단이 핵심 선수 3인방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싸우지 않았서 화가 났고 새로운 선수를 추가하는데 대한 그들의 선택에 동의하지 않았다.
2016-17 프리시즌에서 상황이 험악하게 변했다. 현재 도르트문트 이사회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얀 헨리크 그루제키는 지난 2월에 투헬이 초어크에 대해 화가 난다는 메세지를 그의 에이전트 Oliver Meinking에게 보낸다는 것을 실수로 미하엘 초어크에게 보냈다고 폭로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때 끝났다"고 그루제키는 말했다. 투헬은 일찍이 팬들과 유대감을 쌓는 일에 관심이 없었으며, 1966년 유러피언컵 위너스컵 결승 우승 50주년인 큰 클럽 행사에도 불참했다. "그는 클럽의 역사가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그루제키는 느꼈다.
Meuren과 Schachter는 책에서 그가 감독으로서 훌륭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많은 선수들의 말을 인용했다. 모든 것을 강하게 밀어부치고 개인에게 까탈스럽게 굴었던 것이 불행으로 다가왔다. 전 도르트문트 골키퍼 로만 바이덴펠러는 "스포츠적인 면에서 투헬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그의 훈련세션은 뛰어났고 선견지명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에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없었다."
투헬은 존경받는 수석 스카우터인 스벤 미슐린타트와 사이가 나빠졌고 훈련장에서 그를 금지시켰다. 클럽 직원들은 그의 감정 폭발에 두려워하며 살았고 이것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일어났다. 도르트문트는 피치에서 좋은 성적을 이어갔지만, 시즌 내내 보드진 및 라커룸 일부 구역과의 관계가 점점 더 긴장되었다.
그때 폭탄이 터졌다.
2017년 4월 11일, 세르게이 베너골드라는 남자는 도르트문트가 모나코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하기위한 호텔 밖의 버스를 폭발시켜 선수단 전체를 살해하려고 시도했었다. 수비수 마르크 바르트라는 팔 골절상을 입었지만 나머지 일행은 기적적으로 부상을 면했다. 베너골드는 주가가 폭락할 것을 노린 금전적인 동기를 가지고서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판명났다. 그는 징역 14년을 선고받았다.
8강 전 첫번째 경기는 다음 날 저녁으로 연기되었다. 여전히 충격에 빠진 도르트문트는 3-2로 패배했다. 투헬은 자신이 구단에게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고 불평했지만 도르트문트는 24시간 후 그가 경기를 다시 준비하기로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신뢰의 붕괴는 종점만 남았다. 투헬은 시즌을 지속했고 포스트 클롭 시대에 클럽의 유일한 트로피인 DFB 포칼을 우승했지만, 그 후 경질되었다.
도르트문트 CEO 한스 요하임 바츠케는 그의 경질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투헬이 "환상적인 코치지만 어려운 사람"이라고 거듭 말했다. 에이전트 Meinking 는 이렇게 인정했다. "토마스의 에너지는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문제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모 아니면 도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투헬 감독 밑에서 선수 스카우트를 하도록 격려받은 나겔스만이 그를 '사람들과 아주 잘 지내거나 그렇지 못한' 타입이라고 묘사했다."
1년 뒤 파리 생제르맹에서의 직장에서는 투헬이 선수들과 더 강한 감정적 교류를 발견했다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자각하는 남자라면 실수로부터 배우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는 '규칙을 깨는자' 강연에서 "실패를 잊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 보다 가장 크고, 가장 예기치 못했던 성공을 거둔 것을 잊기 위해 몸부림 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모나코와의 커뮤니티 쉴드 슈퍼컵에서, 그의 첫 대회를 우승한 후, 선수들에 의해서 샴페인에 흠뻑 적셔졌고 미디어 앞에서 패럴의 해피를 함께 불렀다. 구단과 함께 일한 시간이 비교적 짧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협동성은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PSG에서 초특급 자아를 가진 선수단을 집단적이고 응집력있게 뭉쳐서 경기를 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실의에 빠진 교체 선수들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한 언론과의 기묘한 작은 충돌을 제외하고, 투헬은 프랑스 수도에서 카타르 소유의 클럽을 전체 시즌 리그1 우승을 이끌고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또한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갔다. 지난해 8월 리스본에서 그의 균형잡힌 선수들은 바이에른 뮌헨에 1-0으로 패배했다. 좋은 찬스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다른날 밤에 쉽게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번째 시즌을 받지 못했다. 이번 좋지 못한 결과는 PSG 단장 레오나르도였다. 이적 거래는 논쟁거리 중 하나였지만 독일 측근들은 레오나르도가 투헬의 팀 선발과 훈련 체제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이는 전 AC밀란과 브라질 미드필더가 부인한 것이다. 투헬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해고되었지만 남은 6개월 동안의 계약금을 전액 지불받았고, 그는 즉시 새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첼시는 그와 일한 경험이 많은 에이전트와 구단 관계자들의 의견을 조사하면서 그의 성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거의 친구를 사귀지 않았던 도르트문트에서도 관계자들이 그의 뛰어난 능력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팀에서 놀라운 일을 하기 때문에 항상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라고 그 클럽의 가까운 한 소식통이 디 애슬레틱에 말했다.
첼시는 선수들과 팀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설득당했다. 매력적이고, 박학다식하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는 2016년 여름 안토니오 콘테가 감독으로 임명되기 전에 마리나 그라노브스카야와의 초기 인터뷰에서 이미 좋은 인상을 남겼었다.
가장 흥미로운 질문들 중 하나는 이 특정 직업에 대한 그의 적합성은 사실 그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그러나, 예시로 들은 이유들은 그의 불같은 성질보다 전술적인 접근에 관여된 것이다. 2017년, 도르트문트 팀 코치에게 폭탄 공격이 일어나기 몆 주 전에, 그는 런던에 거주하는 작가 벤 리틀레턴에게 첼시 코치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절박한 환경이 왜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유를 말했다.
"모든 클럽에는 정신이 있다."고 그는 리틀레턴의 훌륭한 책에서 말했다. "아약스, 아스날, 바로셀로나, AC밀란과 같은 몇몇 클럽들이 있다. 그들은 심미적인 게임을 좋아한다. 그것은 우승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기느냐, 어떻게 경기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현재 첼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와 같은 클럽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한다. 각 클럽에는 카리스마와 아우라가 있다. 예를 들어, 토트넘 핫스퍼는 보르시아 도르트문트와 같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흥미로운 것을 좋아한다. 내 철학은 미학이다. 미학은 매 분마다 공격하고 가능한 한 많은 골을 넣기 위해 공과 리듬을 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투헬은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하는 클럽' 중 한 곳에 취직할 수 있느냐는 리틀레턴의 질문에 투헬은 너무 원해서 이길 수 없다고 대답했다. "물론이지만 고용주의 비타협적인 요구가 축구 신념과 충돌한다면 이러한 업무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내 자신에게 정직해야한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종류의 클럽에 대해 올바른 성격과 올바른 접근 방식을 가진 적절한 사람인지 자문해봐야한다. 아니면 내가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여기서 오해를 겪게 될겁니다'라고 말하는게 나을까? 그러나 클럽 자체는 그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있어야한다."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는 자연스럽게 결과와 즐거움을 원하는 경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슈퍼 카리스마가 있고, 거물급 코치가 이상적으로 고분고분한 부서장처럼 행동하길 원한다. 완전히 받아들인 부분은 그가 절대로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는 다는 것이며 너무 많은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서런던에 내재된 모든 모순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유럽 축구의 더 변덕스럽고 복잡한 것들 중 하나인 투헬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은 더 매혹적인 선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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